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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스탁의 월요칼럼 : 증권 전문가가 되던 때

2018-09-03 17:58


증권 전문가 생활 #1




2007년 여름이었다. 나는 이때부터 증권 전문가라는 호칭을 달기 시작했다. 별생각 없이 만들었던 문스탁이란 필명이 십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나를 따라다닐 것이라곤 그때에는 생각지 못했다. 



십여 년 전 어린 나는 대학 시절 증권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익힌 몇 가지 주식시장의 해법들을 가지고 운 좋게 돈을 제법 번 젊고 패기 넘치는 투자자였다. 어린 나이에 큰돈을 잃어보고 얻어보며 시장의 섭리를 조금 빨리 깨닫게 된 젊은 투자자는 주식투자 외적인 활동도 하고 있었다. 전국의 대학생 투자자들을 모아 학교에서 주제넘게 강연을 하기도 했고 모교 내 주식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을 불러 모아 매일 저녁 강의를 하기도 하였다. 



아마도 어린 문스탁은 내가 알고 있는 주식의 해법을 증명하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이때에 나는 스타 증권 전문가가 꿈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우리나라 제도권 안에 들어가 증권 관련 일을 할 생각도 별로 없었다. 그저 주식 투자가 내 인생에 업이 될지 평생의 취미가 될지 결정할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 정도를 알고 있을 때였다.



그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정보 교환을 목적으로 작은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었고 예상치 못하게 이 작은 커뮤니티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이야기들이 주식 시장에서 운 좋게도 맞아떨어질 때마다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어린 문스탁이 인생에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계기다.



사실 나는 2007년 12월 어떤 단체를 통해 뉴욕의 멘허튼으로 2년간 떠나는 것이 계획되어 있었다. 이 단체에서 진행하는 대형 전시회에서 뉴욕을 소개하는 역할도 맡아 가보지도 않은 뉴욕을 공부하며, 새로운 도전을 앞에 둔 젊고 유망했던 지금과는 전혀 다른 미래를 그리던 문스탁의 모습도 있었다.



떠나기 전까지만 운영하자 했던 커뮤니티가 커지고 내가 할 일들이 많아지자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는다.  아마도 매일매일이 재미있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그때 마침 함께했던 친구들과 이 일을 사업화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나에게 주식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준 친구가 영국 유학 도중 귀국하겠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듣기만 해도 설렜던 뉴요커라는 단어가 서서히 시큰둥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바로 앞 명확했던 나의 미래가 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국이라는 설렘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흥미진진한 일들은 정말 즉흥적으로 모두 한 달 사이 결정되고 실행되었다.



이때에도 정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내가 회사를 차린 것은 순전히 고객들 때문이었다. 그냥 재미로 내 인생의 방향을 틀기에는 너무 무모하지 않은가? 나는 고민을 가감 없이 커뮤니티에 이야기했고 정말 수 백명의 회원이 돈을 지불하겠다 하였다. 기막힌 일이다. 뭔지 모를 이 감동적인 스토리로 나는 부모님을 설득했고 나는 결국 남았다.



젊은 투자자는 그렇게 사업가가 되었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되지는 않았다. 내가 원래 좋아했고 즐거워했던 주식투자를 고객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것일 뿐이고, 사업을 한다기보다는 주식을 한다고 생각했다. 책임감을 가지고 고객들을 이끌어 보고자 하였다. 



그때에는 마치 내가 주식의 신이 된 마냥 매일 즐겁게 일을 했다. 내가 가진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기에 그랬을 테고 또 기업의 오너와 증권 전문가라는 감투 속에 숨겨진 대우와 사람들이 나를 바라봐 주는 시선들을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에는 그런 것들에 강한 희열을 느꼈던 것 같다. 어릴 적 학교에서 수업 중 주식투자를 하다 몇 번을 쫓겨나며 문제아로 찍혔었던 그 문제 학생이 주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때로는 스승이 되기도 하는 그 강열한 희열을 느끼던 순간들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뭐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지만 더 나은 인생의 길도 있지 않았나는 생각은 가끔 하곤 한다. 그리고 너무 많이 아는 척을 했던 그때의 내가 사실 많이 쑥스럽기도 하다. 나는 주식투자에 있어서 일반인들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었을 뿐이데 절대적인 존재인 척을 했었다. 물론 그때는 정말 그런 줄 착각하고 살았다.



십 년이 넘는 전문가 생활 동안 예상치 못한 수많은 변수들을 경험하고 느끼고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전문가 생활을 하기 전 내가 가진 지식보다 전문가 생활을 하면서 얻은 경험이 주식시장에서 훨씬 더 나은 사람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을 한다. 내가 최고라는 오만한 생각을 버린 것도 전문가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여러 상황들을 통해서였다. 나는 더 나은 사람, 투자자가 되기 위하여 계속 노력했고 더 큰 것들을 바라보는 시야와 수익을 위한 여럿 룰을 만들어 왔다. 물론 지금도 완벽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때보다 더 많은 해법들을 찾았고 더 안전한 방법들을 찾았고 더 편안한 방법들도 찾을 수 있었다. 



우여곡절이 없던 것은 아니다. 이 일을 오랫동안 하면서 여럿 사기꾼들도 만났다. 더러운 순간들도 경험했다. 무엇보다 어느 순간 회의감이 든 적도 있다. 돈은 이미 나에게 중요한 것이 아닌지 오래였다. 과연 이 일이 재미있는가의 문제가 생긴 것이다. 어떤 재미난 일도 그것이 반복되다보면 WORK가 되고 그러는 순간 내 인생의 의미를 잃게 된다. 의무적으로 했던 방송도 떠나보고 내 일을 다른 직원들에게 맡기고 색다른 재미가 있어 보이는 다른 일도 병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또 나는 내가 제일 잘하고 즐길 수 있는 일로 돌아왔다.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내가 질리지 않도록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잘 조율하면서 이 일을 계속해 나간다는 것이다.



벌써 엊그제 같은데 이러한 과정들을 겪으며, 어느덧 십여 년이 지나 나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고 제법 나이도 먹었다. 조금 나를 포장하자면 어린 나이부터 투자를 깨우쳐 나의 젊음을 주식시장에 다 팔아 버렸으니 뭔가 더 큰 삶의 의미를 갖고자 하며 살고 있다. 그 어린 나이부터 돈만 좇았다 하면 너무 불쌍한 삶 아닌가...



나는 그래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꽤나 멋있는 의미를 부여한다. 나는 그저 장사를 하는 장사꾼이 되고자 한 적은 없다. 사업을 위해 이윤창출은 필연적인 목적이나 나는 주식쟁이다. 나를 거친 사람들이 “문스탁은 다른 증권 전문가들하고는 달라”라는 이야기를 듣길 원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계속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이다. 이런 말을 듣기 위해 일을 하는 것과 그저 사업을 하는 것은 다르다. 오너의 마인드는 정말 중요하다. 고객을 사업의 도구로만 생각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별것 아닌 이러한 것들이 바로 내 삶의 원동력이고 또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내 이름 석 자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으며,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계속 나를 돌아본다. 알다시피 주식판은 한 번의 실수가 치명적인 오점으로 남을 수 있기에 오점을 남기지 않게 하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이 떴다방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증권 전문가들과 나와의 차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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